중국 소림사의 현황과 발전방안


정 성 철 (전통스포츠진흥회 회장)


Ⅰ. 서론

"생존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다" 는 말과 같이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연속 과정이었으며, 무술 또한 그 투쟁의 한 수단으로 발전되어 왔다.
종족마다 언어가 다르듯이 무술 또한 서로 다르며 전쟁이나 무역 등으로 각 종족간에 혈통이 섞이고 문화가 교류되어 왔듯이 투쟁의 한 방법인 무술도 자연히 교류되고 변모 발전되어 온 것이다.
소림사의 무술을 말하기에 앞서 이해 되어야 할 부분을 논하고자 한다. 투쟁의 한방법인 전투의 수단을 보는 관점에 따라 무예, 무도, 무술이라 칭하나 그 것의 본질은 강해짐을 추구하는 것이다. 소림사의 무술을 소림쿵푸, 소림십팔반무예라 하는데 쿵푸(功夫)의 의미는 무엇인가? 쿵푸란 무엇을 성취한 자, 무엇이 완성된 것을 말하며, 깨달은 자, 완성된 예술품을 뜻하기도 하며, 이 용어가 전통무술에 대명사가 된 것은 무술 자체가 도와 일치하며 완벽한 인간으로 단련해 나감을 잘 나타낸 용어이다. 십팔기삼십육계(十八技三十六械)란 자신을 지키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상대를 살해하는 기술을 이르며 송대의 문헌에 보면 열일곱의 병기술과 백타(白打) 즉 맨손 기술을 일컫는다. 앞서 말했듯이 도의 관점과 기술의 관점에서 같은 무술의 명칭이 달라짐을 볼수 있다.



Ⅱ. 소림사의 설립배경과 무술

 1. 소림사의 역사

소림사는 중국 오대명악의 하나인 하남성 등봉현 숭산에 위치해 있으며 소림사의 상주원을 통칭 소림사라 하며 소림사에는 상주원, 탑림, 초조암, 달마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주원의 위치는 오유봉 아래 소실산 북쪽변에 있으며 등봉현성에서 서북으로 십삼공리에 위치한다. 중국 불교가 성행하던 북위태화 17년(서기 493년)에 효문제가 인도승 발타를 위해 건립하였으며 송말에 마하가섭(석가모니의 제자)의 28대 전인인 보리달마가 인도에서 건너와서 선종을 전수하여 이후 창성 하였다. 소림사에는 명대의 오백나한도의벽화와 청대 권보벽화, 금대의 철종, 진왕고소림사주고비 등의 수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으며, 소림이란 소실(少室)의 숲에서 유래 되었으며 달마의 선종 이후 땅안에 하늘이 있으며, 심전언외(心傳言外)라 입을 열면 법이 어긋나니 마음으로 법을 전하는 이심전심의 도가 전해진다.
선종의 수도 방법인 면벽으로 소림사의 수도승들의 몸이 쇠약함을 보고 무술을 단련 시켰으며 오랜 세월동안 많은 입산과 하산으로 자연히 민간무술이 흡입 방출 교류되어서 무술의 정화로 발전되어 하나의 가문을 이룬 소림파가 형성되었다. 선종으로 유명했던 소림사가 무술로써 이름을 드러낸 것은 당나라 초기(서기 618년)에 일어난 왕세충의 난에서 진왕 이세민을 소림사의 담종을 비롯한 십삼명의 승려가 구했으며 이후 이세민은 당의 태종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당태종은 친필 비석을 하사하고 많은 전답과 술과 고기를 먹을수 있는 권리를 부여 하였으며 승병의 제도를 두었다. 대원의 지정 11년에 홍건이 난을 일으켜 소림사에 난입했을 때에 소림사의 긴나라 라는 성현이 곤 하나를 가지고 물리쳤다 하며 이후 소림사는 곤술이 성행되었다. 명조 가정년간에 중국의 동남 해안에 일본왜구의 침입이 잦아서 소림사의 월공등 삼십여명의 무승이 밤을 건너 왜구를 물리쳤으며 근세의 청일전쟁 당시 1926년에 소림사 주지를 비롯한 승려들이 소림사보안단이라는 승병을 만들어 참전하였으며 현재 사진 자료로 남아있다.
소림사는 선종의 발원지로 초조 달마를 시작하여 이조 혜가, 삼조 승찬, 오조 홍인, 육조 혜능 등으로 법통이 이어졌으며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국토이며,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선의 사상을 수행했으며 한국, 일본 등의 동남아 선종불교의 발원지로 볼수 있다. 이조의 혜가가 달마에게 법을 구하고자 어느 눈 쌓인날 한참을 밖에 서 있자 달마가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받아주겠노라 했다. 혜가는 자신의 왼팔을 잘라서 눈을 붉게 물들여서 달마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소림사에는 다른 종파와 달리 한손으로 합장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소림사는 역사와 더불어 흥망 성쇄를 거듭해 왔으며 많은 유적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위, 당, 송, 명 등을 거치며 3차의 화재가 있었으며 청조 말년에 소림사는 쇠잔의 형세를 보였으며 특히 1928년의 화재와 항일투쟁후 1944년경의 소림사 장경각 및 산문등이 유실됬으며 권보 및 권경등도 많이 유실 되었다. 중국인민정부의 건국후 국가 경제의 곤란으로 1974년에서야 소림사 산문의 보수를 시작으로 현재의 소림사의 형세를 갖추게 되었다.

 

2. 소림사 무술의 형성 및 내용

1) 소림사 무술의 형성

중국 전통무술에서는 가(家)나 파(派)로 불리는 독특한 풍격을 지닌 무술이 중국체육위의 통계에 의하면 120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문파적의 호칭은 최소 100년 이상의 계보와 기술적 이론적 철학적으로 정립이 되었을 때에 부르는 호칭이며 지역적인 분류로 남방무술, 북방무술로써, 철학적인 분류로 불가무술, 도가무술로써, 형세적인 분류로 내가권, 외가권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다.
소림사의 무술은 불가무술의 모체로 보며, 형세적으로 강맹한 외가권이며, 지역적으로 북방무술로 분류 한다. 소림사의 무술적인 유래는 달마의 역근, 세수경을 근원으로 나한십팔수를 전했다 하며 이후 백옥봉이 나한십팔수에 72수를 더하여 173수의 권법의 대계를 이루었다 하며 많은 무술의 교류와 무술인들의 입산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소산, 월공, 여정, 홍익, 일관, 독장 등의 소림사의 많은 무승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림사의 무술이 오랜 역사를 간직했듯이 중국의 남방계열의 홍가권, 영춘권, 불가권 등의 많은 남소림권의 모체가 되었으며 북방으로 북소림권, 장권, 당랑권 등의 모체가 되었다.
소림사는 선종의 조정(祖庭)이다

"무(武)라 함은 도(道)와 상응 하나니,
닦음을 본(本)으로 하여 닦음이 없는 대로 이르는 것이라.
무(武)는 합자연(合自然)이 종(宗)이나
거슬리는 공부(功夫)이라 어디에 거슬리는가?
꽃이 제자리에서 그저 그러히 피어났을 뿐
예쁘다 향기롭다는 꽃이 그러함이 아니듯
만물이 여여(如如)히 제자리에 있으나
인간의 욕망이 거슬리는 바이다.

소림사의 무술은 선무일여(禪武一如)라는 종지로 깨달음과 무술이 다르지 않다는 말과 같이 무술을 선(禪)의 한 수행 방법으로 봤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한 방편으로 본다.

2) 소림사 무술의 내용

"달님이 옥봉을 비추니, 무예는 신용을 초월하고,
정성을 다해 오권을 펴치니, 수행자는 절기를 높이 받아,
사문의 감로로 여기어, 힘써 무예를 닦아라."

소림사 무술의 수련 기본은 일구내연기(一口內練氣)하고 외연근골피(外練筋骨皮)하라 듯이 안으로는 기를 연성하고 밖으로 뼈와 근육을 단련하며, 강한 가운데 부드러움을 두고, 부드러움 가운데 강함을 감추며, 발경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하며, 혼합 타격법으로 솔수(던지기), 금나(꺽기, 조르기), 척(발기술), 타(손기술), 주(팔굽,무릅)등의 기술을 병행하여 사용한다.
수련의 원리로는 운기조식(運氣調息):운동할 때에는 마음으로 기를 움직이며 호흡을 고르며 사지를 움직여 기를 조정하여 단전으로 기를 발생 시킨다. 기세연관(氣勢連寬):무술의 투로에서 각 초식의 기운이 끊어지지 않음이고 물이 흐르는 이치이다. 각 기술의 형세는 끊어져도 기운은 이어짐을 교묘히 운용한다. 도수법리(徒手法理):인체의 급소를 타격하며, 손의 치기, 차는 기술, 던지는 기술, 잡고 꺽는 기술등을 잘 배합하여 운용하여야 한다. 음양조화(陰陽調化):강과 유의 조화와 빠르고 느림의 변화와 상하 병합을 지칭하는 것이다. 수안신법보협조(手眼身法步協調):손, 눈, 몸, 걸음이 서로 도와서 기술의 움직임에 일체성을 두어야 한다. 내외합일(內外合一):움직이는 동작이나 기술은 마음에 근본을 두며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을 통제 하는 것이다. 주경중의(主勁重意):몸안에 발산할수 있는 이상적인 기운과 바른 기술의 사용법을 중요시 한다.
소림사에는 많은 권법 및 병기술과 기공술 등이 전래되어 오며 고전적인 투로로는 심의권, 유권, 나한십팔수 등을 볼수 있으며 현재 심의파, 대통비, 대홍권, 조양권, 나한권 등의 많은 투로가 있으며, 병기술로는 18반 무기술이 전승되며 그 중에 곤술로 유명했으며 고전적인 투로는 야차곤, 음수곤을 비롯하여 현재 육합양수곤, 효화곤, 제미곤, 소매화곤 등의 많은 병기 기술들이 전래되며, 또한 기공으로 역근 세수공, 소림장기공, 매화춘, 공동공 등의 많은 기공술이 전래되며 "기를 연성함은 성(性)을 깨치는 바, 곧견성하는 것이며 각도(覺道)하는 것을 일컷는다. 소림72기예의 외문 연공법이 전래되며, 이외의 많은 권결과 구결(육합연신결, 십육세법초, 추월대사장결, 포권나왕전가결)들이 전수되고 있다.

Ⅲ. 중국 소림사의 현황

1. 소림사의 관광 자원

소림사는 선종의 본산으로 불교성지의 하나로써 종교순례의 관광가치와 천하무예 출소림이라는 말이 있듯이 스포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중원에 위치한 중국 오대성산의 하나로 오랜 역사의 세월속에 많은 문화재 등이 소재하며 좋은 경관과 역사성과 종교와 무술의 다양한 관광자원으로써의 집중력을 가진 곳이다. 현재 숭산에는 72개의 봉우리와 72개의 사찰로 이루어졌으며 북위의 숭악사탑, 한대의 숭악삼궐, 원대의 관성대, 소림사, 중악묘, 숭양서원 등의 많은 절, 탑, 석비, 유적 등이 있으며 또한 근처에 개봉, 상국사, 철탑, 우왕대가 있으며 낙양의 성도가 가까이 자리잡아 관광자원으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허나 지리적으로 중국의 내륙인 중원에 위치해 있기에 하남성 정부는 관광자원의 개발을 위해서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2. 소림사의 운영 현황

중국의 소림사가 해외에 알려지기 전에는 중국의 자체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었으며 1964년 민중중국이라는 신문에서 하남성에 지방색채가 강한 소림사무술을 소림사주지인 석덕근화상이 시범을 보였다는 정도이며, 또한 전국무술표연대회에서 소림사 제자와 주지가 소림사 이지선을 시범을 보였다는 정도로 알려져 왔다. 필자가 한중수교 이전인 1980년중후반 경에 소림사와의 비무대회로 방문했을 때에는 조동종과 법화종의 승려가 이십여명 상주하고 있었으며 문화혁명의 공백으로 방장 덕선과 소희등의 몆몆의 노장외에는 젊은 승려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연무나 비무대회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천불전내에서 거행했으며 현대화 관광화되지 않은 소림사를 느낄수 있었다. 1988년 9월에 국가관광국에서 소림사 근처에 소림사무술관을 건립하여 개관하였으며 무술관은 소림사무술의 시범과 중국인 및 외국인의 수련등과 관광사업을 목적으로 하며 무술관내에 호텔 및 불교용품 무술용품 등을 판매 운영하였다. 당시의 일반인들의 소림사무술의 수련은 군소단위의 몇 몇 무술관이 노천에서 수련하는 형태였다.
현재에 소림사의 명예방장으로 소희대사가 있으며 방장대행으로 영신법사가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과거의 승려들은 대다수 하산하여 무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림사 상주 승려들은 조동종의 승려들로 3~40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또한 소림사 경내에 불교용품점과 소채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소림사에서 국제행사나 무술 시범이 있을 때에는 무술관 등에서 인원의 지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고 있다.
소림사무술관은 국립무술관이며 소림사의 명성을 듣고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 소림사에 무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소림사와 당국은 배우려 오는 사람을 모두 수용한다는 방침과 외국 관광객을 위해 설립 했으며, 학생수는 8~900명 수준이다. 소림사무술관 외에 소림사무술학교, 탑구무술학교, 소림사십방무술학교, 선무문화학교, 하남소림무술학원등의 대규모 무술학교들이 있으며 학생수는 대략 학교당 1000명 정도씩 되며, 외국인의 수용을위해 귀족반을 따로 운영하며 수련비 자체도 비싸다. 소림사무술학교의 경우는 자체 영화사를 운영하여 수익을 증대 시키며, 그외에 소림사 주변에 중소 규모의 무술원이 2~30개 있으며, 등봉시에도 시립 무술관외에 이십여개의 중소규모 무술원이 운영되고 있다.소림사무술학교들의 출신 수련생들의 진로는 시범단에 단원이 되거나 영화계로의 진출과 경찰로 취업이 많이 된다. 대다수의 무술학교의 일정은 AM6~7시에 구보 및 기본공, AM9~12시에 권법 및 기본공, PM2~6시에 권법과 무기술 및 체조 등으로 학과가 구성되어 있으며, 어린 학생들은 문화수업이라 해서 오전에 일반학교 과정을 지도한다. 수련비는 외국인은 1일 15~20달러이며, 중국인은 일년에 인민폐 3000원~만원 정도이며 숙식비도 포함된다.

3. 소림사의 관광객의 유치방안

현재에 하남성 정부는 관광명소로써의 소림사의 지명도를 한껏 활용하고 있으며 소림사를 찾는 관광객이 하루에 5~6만명 정도이고 외국인만도 하루 백여명씩 찾아든다. 외국인은 주로 서독, 프랑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오는 이가 많은데 주로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며 한국인은 대다수 종교 순래자들이많다.
하남성 정부는 관광의 수입 및 경제의 부흥, 체육문화의 진흥을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으로 중국 국제소림무술절의 행사를 1991년 9월에 제1차 대회를 시작으로 현재 제6차 대회까지 주최하였으며 아시아게임 정도의 규모로 국제소림무술대회 및 경제의 교류 유치, 문화와 예술의 공연 등을 진행하며, 보통 이삼십개국에서 대표단을 참가한다. 필자도 수차 선수단을 참가하여 좋은 성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보였으며, 제1차 대회때는 한국 태권도를 소개하여 중국 중원에 태권도를 알리는 첫 번째 개기가 되었다. 제5차 대회의 현황으로 대회의 진행상황을 보면 대회의 사상은 발양 중화무술, 광대 대외개방이며 종지는 이무회우, 공동병보로 써 중국정부의 주관하에 무술, 문화, 경제 등의 일체적인 종합대회이다. 참가 국가단위는 27개국 570명이 참가 했으며, 개막식 및 심판 코치의 연회, 무술대회, 소림사 시범경기, 대회, 대회 및 폐막식으로 진행했으며, 무술대회 기간내에 무술절"서곡"등을 황하축경관구에서 거행, 각지 민간전통예술의 공연 및 소림무술등의 시범, 성 체육관의 대형문예공연, 각종가무단과 가극단공연, 홍콩의 유명 가수(유덕화, 성룡등) 및 중국유명 연예인공연등에서 볼수 있듯이 중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체육문화의 부흥 및 관광의 활성화와 경제의 부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